한광일의 한국웃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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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적인 삶
긍정적인 삶

다섯 번째는 긍정적 사고로 살아가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와 삶만이 즐거울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나는 참 힘든 역경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나는 처음부터 연세대학 교수가 된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을 하다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우리 연세대학 교수님이 1,300명이 넘지만 밟아 올라가서 교수 된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다.
나는 우리집에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바로 2km 떨어진 경주 안강중학교는 입학금을 내야해서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 아버님이 뒤늦게 입학금을 장만해 온 것은 동생들 공부시키는데 쓰기로 하고 나는 입학금 안내는 학교를 찾아보았다. 우리 집에서 14km 떨어져 있는 포항 위에 영일 중학교라는 곳이 입학금만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걸어서 가니 3시간 반이 걸렸다.
입학을 하고 새벽 4시가 되어서 책보자기를 둘러매고 “아버님, 어머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면 우리 어머님은 아침마다 우셨다. 그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나 혼자밖에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얘야, 캄캄한데 먼 길 조심해야 한다.” , “달이 있어서 괜찮아,” 그렇게 중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를 가야 하는데 마침 2km 떨어진 경주 안강중학교 병설 농업 고등학교가 생겨서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50명 정도 들어갔는데 학교가 나쁘다고 애들이 다 나가버리고 졸업할 때 13명만 졸업을 했었다.
문교부에서 학생이 없다고 학교를 폐교시켜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들어갈 때 생겨 가지고 나올 때 없어졌다. 그런 고등학교를 13명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가야 하는데 첫째는 실력이 없었다. 농고에서는 감자, 고구마, 심느라고 공부를 못했다. 둘째는 돈이 없었다.
돈 없는 사람이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사범학교를 가야 한다는 얘기를 고등학교 2학년 때 듣고 나는 그 때부터 집에서 독학하기 시작했다. 사범학교는 미술, 음악, 이론 시험을 다 치르는데 농고에는 음악, 미술, 그런 것 안 가르친다.
사범학교가 그 당시 없어져 버리고 교육 대학이 있었는데 거기에 합격이 되었다. 들어가니 돈이 안 들고 먹고 자는 데만 돈이 들어서 가정교사로 들어가서 그 집 아이들 셋을 밤 11시까지 공부 가르쳐주고 밥 얻어먹고 학교를 다녔는데 감사하게도 졸업할 때 우리 졸업생 280명중에서 내가 학업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내가 상을 받고 내려오니 우리 어머니가 내 손목을 잡고 우시면서 “얘야, 너 가정교사 한다고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시골에서 올라와서 도시애들 다 물리치고 공부를 그렇게 잘했니?” “어머님‘ 제가 공부를 잘한 것이 아니고 다른 애들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왜 우시는지 압니까? 다른 애들은 졸업한다고 좋은 옷 입고 꽃다발 받고 카메라 가지고 사진 찍고 그러는데 나는 그때 국방색으로 염색한 옷을 입고 졸업하였다.
우리 어머님이 얼마나 우시던지 “어머님, 울지 마세요. 돈 없는 것은 흠이 아닙니다. 어머님, 제 가슴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시지요?” 우리 어머님이 “네가 어려서부터 큰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비록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가슴속에 큰 꿈을 갖고 있었다.
자녀들, 손자들의 가슴속에 꿈을 심어주세요. 그러면 아무리 어려워도 조금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나는 왜 어릴 때 꿈을 갖고 있었냐면 동화책을 빌려서 많이 읽었다. 특히 위인전을 많이 빌려서 읽었다.
자녀들, 손자들에게 책을 많이 사줘서 책 많이 읽도록 하라. 책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우리 김대중 대통령도 학벌도 없는 분 아닙니까? 그런데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그 분이 글을 많이 읽었기 때문인 것이다.
링컨 대통령을 보자, 초등학교 중퇴한 링컨 대통령이 책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아버지가 일을 시키면 한 손에는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통나무집에서 자란 링컨이 대통령이 됐다는데 우리 집은 통나무집 보다 훨씬 좋았다. 나도 앞으로 커서 링컨 대통령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좋은 일 많이 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시골로 지방으로 교사 발령 받아갔는데 나는 공부 잘 한 덕으로 시내 중심지에 발령 받게되었다. 이것이 연세대학 교수가 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야간대학에 들어가서 대학원까지 가서 대학원까지 가서 연세대학 교수가 됐는데 내가 하도 야간대학을 많이 다녀봐서 밤길을 잘 찾는다. 공부를 계속 하다보니 너무 힘이 들어서 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연세대학 교수를 뽑는다해서 서류를 구비해서 제출했더니 공개채용에 내가 뽑혔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초등학교 선생님 하다가 일약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니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우리 연대 교수들 중에는 하버드,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 나온 사람도 많은데 나는 초등학교 선생 하다갔기 때문에 그분들 대열에 같이 설 수는 없지만 나도 연구 열심히 하고 논문발표 잘하고 강의 성실히 잘 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가 논문을 108편을 발표하고 강의를 하면 학생들이 강의를 너무 성실하게 잘 주시고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말들을 했다.
그리고 몇 년전 우리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연락이 오기를 어느 교수님 강의를 듣고 싶냐고 설문 조사를 했더니 황수관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싶다는 학생이 많았다는 조사내용을 알리면서 얼마 있으면 연고전을 하는데 총학생회에서 우리 황 교수님 오셔서 격려 말씀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바빠서 못 간다고 하니 그러면 비디오 촬영이라도 하자고 해서 촬영한 기억이 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이 자꾸 나보고 “황박사, 몇 평짜리 살아요? ”하고 묻는다. 그래서, 내가 50평 미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집사람이 얼마나 돈을 알뜰하게 모았는지 천만원을 모았다. 취직하기 전에는 단돈 십만원도 없었는데 취직을 하고 나니까 570만원 융자를 해주어 그걸 받아 방 2칸짜리 얻으니까 아이들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 집에 와 보고 이렇게 사는 줄 몰랐다고 했다. 늘 밖에서 싱글벙글 웃고 다녀서 잘 사는 줄 알았더니 세상에 이런 콧구멍 같은 셋방에서 살 줄 몰랐다고 하였다.
행복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자기만족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행복인 것 같다. 앞으로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생각하라.
솔직히 말해서 지금 병원에 가보면 각종 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궁암, 유방암, 폐암, 위암, 골수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건강한 몸으로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하라.
그래서 오늘부터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웃으면 행복이 절로 온다. “소문만복래(笑問萬福來)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만나는 사람마다 행복하게 만나고 돌아갈 때에도 행복하게 만나고 일생동안 행복하게 살도록 하자.
“웃음은 바로 행복으로 가는 관문인 것이다.”
교수는 봉급이 많지 않다. 그래서 명예를 가지고 사는 데 나는 요즘 CF모델도 한다. 몇 해전에 나한테 CF제의가 28군데나 들어왔다. 그 전해에는 13군데 들어왔다. 두 해 사이에 CF신청이 41군데 들어온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을 거다. 그 중에 내가 골라서 몇 군데 나갔다. 그런데 많은 분들의 전화나 편지가 오는데 당신 정신이 있는 사람이냐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선생 하다가 사표내 버리고 사글세방으로 갖은 고생을 그렇게 해놓고 왜 돈 벌어서 학교에 사회에 다 갖다 냅니까? 교수님, 그렇게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등등 말이다.
내가 우리 집에 창문 밖에서 들어와 덜덜 떨고 있을 때, 그때 내가 항상 기뻐하라는 구절을 읽고 우리 집에 웃음을 잃은 지 오래인데 오늘부터 웃음꽃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집에 가서 문을 열고 웃었더니 우리 집사람이 기가 차서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웃음이 입에서 나오다가 그 다음엔 목에서 나오다가 가슴속에서 웃음이 나오는 데 거기에는 당할자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집사람이 순하다. 하루는 연탄불이 없어서 애들이 아침을 못 먹고 벌벌 떨고 학교가는 것을 보고 울면서 들어와 나한테 찬물에 찬밥을 주었다. 그러면 나는 찬방에 앉아서 속으로 ‘항상 기뻐하라’ 하였다. 그렇게 하고 나니 집안이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 때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돈과 행복하고는 별 관계가 없구나. 돈이 없으면 불편할 따름이지만 행복한 잠자리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우리 집의 찬바람이 갑자기 산바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행복은 자기만족에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항상 기쁜 마음으로 건강관리 잘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면서 수원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하길 바란다.
우리 몸은 건강관리를 잘 하면 건강하게 120년은 산다고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여러 가지 증명이 있는데 다른 것은 학문적으로 어려우니까 쉬운 걸 말하겠다. 모든 동물은 성장기간 곱하기 5하면 수명이 나온다. 사람은 성장기간이 25년이다. 25곱하기 5를 하면 125년이 나온다.
5년만에 다 큰 동물 보면 25년이 수명이다. 소가 25년이 수명이다. 3년만에 다 큰 동물 보면 15년이 수명이다. 개는 15년이 수명입니다. 1년만에 다 큰 동물은 5년이 수명이다.
쥐가 5년이 수명이다. 쥐를 아무리 건강관리 잘 시켜도 120년은 못산다. 우리 사람은 120년 살 수 있다. 그래서 120년 동안 행복한 삶을 사시고 항상 좋은 일 많이 하고 웃음을 절대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황수관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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