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의 스트레스도 중요하다
한광일
흔히 스트레스는 어른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스트레스는 나이를 불문하고 생긴다. 더욱이 어린 시절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되어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연구에 따르면 쥐를 물속에 빠뜨려 출구를 찾게 하거나 먹이를 놓고 길을 찾게 하는 실험에서 ‘스트레스 쥐’는 ‘정상 쥐’보다 공간학습에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고 한다.
또 한쪽 방에 전기를 흘려 공포를 느끼게 한 뒤 다음날 똑같은 실험을 반복, 이 공포를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를 알아본 실험도 있었다. 그 결과 ‘정상 쥐’는 한 번만 전기자극을 받아도 다음날부터 전기가 흐르는 방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반면 ‘스트레스 쥐’는 아주 둔감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평소에도 매우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에 있어서도 위의 연구들과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어린아이의 경우 평소에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를 일으키는 경향이 높다고 보고됐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태아 프로그래밍’이라는 이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비만이나 당뇨 ․ 암 ․ 심장병 등 성인병의 발병이 이미 자궁 속에서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데이비드 바커 교수는 영국 빈민지역인 하트퍼드셔에서 심장병 사망률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위와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학계에 보고하면서 의학계에 알려지게 됐다.
미국 코넬대 피터 너대니얼스 교수의 「태교 혁명」이라는 책을 보면 이 같은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예컨대 임신한 여성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에 과다 분비되면 태아 역시 그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이 태아는 태어난 이후에도 코르티솔 호르몬이 보통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며 동맥경화나 고혈압 ․ 노화 등이 쉽게 유발된다는 것이다.
임신 12~22주 사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후에 과잉행동장애, 불안장애를 겪는 확률이 높았다는 연구가 벨기에 연구팀에서 나온 적이 있다.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가족에게서도 서로 다른 행동과 질병 패턴이 나타난다면, 자궁에서 지냈던 그 열 달 동안 어머니의 스트레스 정도를 추적해볼 일이다.
|
|
